본문 바로가기
인관관계

도스토예프스키 vs 카뮈, 고통을 말하는 두 작가의 세계관 차이

by 모두의인부가 2025. 7. 11.
반응형

도스토예프스키 vs 카뮈, 고통을 말하는 두 작가의 세계관 차이

도스토예프스키는 왜 신을 택했고, 카뮈는 부정을 택했을까?


도스토예프스키와 알베르 카뮈는 모두 고통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고통 앞에서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습니다. 이 글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신앙적 세계관과 카뮈의 부조리 철학이 어떻게
고통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충돌하는지를 살펴보며,
두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인간 고통에 대한 두 철학자의 출발점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고통의 뿌리를 원죄와 인간 내면의 분열에서 찾습니다.
반면 카뮈는 고통을 세계의 부조리, 즉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와
세계가 제공하는 무의미함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이 출발점의 차이는 두 작가의 작품 전반에 걸쳐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신 앞의 고통, 혹은 신 없는 고통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의 존재를 통해 고통을 해석합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은 "어린아이의 고통"을
신의 정의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분노하지만,
결국 작가는 알료샤를 통해 신과 사랑의 회복을 제안합니다.

반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신을 부정합니다.
고통은 신이 주는 시험이 아니라, 의미 없는 세계에서
스스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의 일부일 뿐입니다.


구원은 가능한가, 아니면 반항이 전부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구원을 믿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지만 회개를 통해, 고통을 통해 신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참회의 과정을 거쳐
영적 구원의 길로 들어섭니다.

카뮈에게 구원은 허상입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죽음을 앞두고도 무의미한 세계에 대해
단념하거나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는 반항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뿐입니다.


두 작가의 고통 표현 방식 비교

작가 고통의 의미 세계관 해결 방식

도스토예프스키 신과 죄의식에서 비롯됨 유신론적, 도덕적 인간관 회개와 구원
카뮈 부조리와 의미 상실에서 발생 무신론적, 실존적 인간관 반항과 수용


고통의 미학, 혹은 고통의 부조리

도스토예프스키는 고통을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조건으로 봅니다.
고통을 피할 수 없기에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인간이 진실에 다가간다고 여깁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고통 속에서 신을 만나거나,
자신의 죄를 직면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합니다.

카뮈는 고통을 무의미한 삶의 상징으로 봅니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의미함을 인정하고도 살아가는 존재를 찬양합니다.
그가 말한 "시지프는 행복해야 한다"는 선언은
고통 앞에서도 삶을 끌어안으라는 메시지입니다.


현실 속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죄를 지었더라도 고통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에 대한 신념입니다.

카뮈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세상이 의미 없다면, 그 안에서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는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 고통과 함께 살아내는 자세를 강조합니다.


두 철학은 공존할 수 있는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카뮈는 서로 반대의 극점에 서 있지만,
둘 다 인간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한 사람은 신을 향한 믿음을,
다른 한 사람은 무의미 속에서의 연대를 이야기합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한 해석은 다르지만,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태도일 것입니다.

 


 

반응형